쩝쩝접 [591036] · MS 2015 (수정됨) · 쪽지

2019-12-23 13:26:38
조회수 13,242

정말 심심해서 써보는 의대생활 (8) - 땡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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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에게 이 그림은 악몽과도 같은 추억이다.


눈썰미 좋은 분은 저게 뭘 말하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오늘 이야기를 꺼낼 땡시다.



해부 시험은 이론 시험과 실습 시험으로 나뉜다.


이론은 학교와 교수마다 다르기에


객관식으로 나올 수도 있고


단답형으로 나올 수도 있고


서술형으로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실습 시험만큼은 전국 모든 의과대학에서 


거진 비슷하게 시험을 본다고 자부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저 악몽을 매년 3000여명이 똑같이 공유한다.



해부를 하기 전까지 학생들이 겪어왔던 타임어택은


기껏해봐야 몇분 만에 대답해야하는 면접 구술문제나


30분만에 20문제를 푸는 수능 탐구영역 정도가 다일 것이다.



우선 실습시험에 왜 "땡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는가?


할리갈리 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할리갈리 보드게임 세트에 있는 종이 하나 있다.


그 종을 누르면


"땡~~~"하고 종이 청명하고 맑게 울린다.



그 종소리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맞다. 가장 의대스러운 시험은 땡시다.


의치한 같은 특수한 영역이 아니고서야


이딴(?) 타임어택형 시험을 내는 곳은 한 손에 꼽을 것이다.



물론 땡시의 교육적 취지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 진료현장에서 


특히 바이탈 중 빠른 상황판단을 요구하는 응급상황이나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야(응급의학과) 등은 


단 몇초만에 환자의 상태를 보고서


빠른 진단과 처치를 실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환자가 아픈 부위가 해부학적으로 어딘질 알아야 하니


땡시는 이에 필요한 기초적인 능력을 테스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힘들다.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나...



그렇다면 해부 땡시는 어떻게 진행될까?


우리 학교의 경우 보통 이론시험을 보고난 후 실습시험을 치뤘다.



밥먹고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교수님이 들어오신다.



"실로 묶은 구조물은 실 끝에 테이프로 붙였으니 그 부위의 명칭을 쓰시고"


"핀셋으로 꽂은 경우는 핀셋이 맨 첫번째로 닿은 그 부위만! 속에 쓰지 말고."



번호별로 그룹을 묶어서 교수님이 나오라고 시키면


볼펜만 들고 복도로 나온다.



"자. 앞에서부터."


"1...2...3... 15... 17?"


"아니 번호 제대로... 다시."


"1...2...3... ... 26... 27"


"전부 다 온거 확인했고 자 여기."



백지에 칸만 그려져있는 답안지를 하나 받는다.


답안지는 문제 번호와 빈칸, 이름쓰는 공란 뿐


이름을 쓰고 해부실로 입장한다.





책상마다 구조물과 시험문제가 적힌 종이가 천으로 덮혀 있다.


천으로 덮힌 그 굴곡을 보고 있자면 압박감이 절로 밀려온다.


문제당 주어진 시간은 30초


30초가 지나면 다음 문제로 무조건 이동해야 한다.



30초가 지날 때마다 종소리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려준다


땡 소리가 나면 바로 이동해야 한다.


안 하면 0점 처리다.



위 그림대로 실습실에 들어온 학생들은 총 3번 동안 땡 소리에 맞춰서 자리를 옮기는 연습을 한다.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3번의 이동 연습이 있고나서


시험이 시작된다.



"자 이제 땡 소리가 울리면 천을 치우고 문제를 푸세요."



"땡."



천을 치우고 어떤 문제인지 본다.


문제는 그때그때 다양하다.



"여기를 지나는 신경은?" (Skull 뼈 구멍)


"이 근육의 명칭?"


"이 구조물의 이름은?"


"이 근육의 origin, insertion은?"


등등...



신경(nerve)인지 동맥(artery)인지 정맥(vein)인지부터 구분해야 한다.


그런거 안 가르쳐주지만 시험을 보는 당신은


그걸 구분해야 한다.


안 하면 그 문제는 0점.



구조물을 볼 때 머리가 하얘지면서 생각이 안 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대충 아무렇게나 적는다.


물론 대체로 틀리겠지만... -_-



가끔은 실습 카데바에 없는 구조물이 나올 떄도 있다.


그때는 플라스틱 모형을 창고에서 꺼내와서


거기에서 내신다.


역시 못 맞추면 0점.



구조물에 붙어있는 실이나 핀셋으로 가리키는 명칭을 써야 하는데


항상 평소 보지 못했던 새로운 view에서 구조물을 가리키거나


실습 중에 파지 않았던 구조물을 파서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뭐 실습 때 못 본 구조물이 나오는 것 쯤이야 흔한 편이다.



가끔은 구조물을 만지고 돌려보면서 실이나 핀셋을 떨어트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우리 때는 없었지만 


그게 의과대학에서는 하도 흔한 일이었나보다.



항상 시험 전에 교수님의 공지가 있었다.


"구조물 만지다가 실이나 핀셋 떨어트리면 뭐 본인도 감점인데... 뒤에 사람들 전부 문제 못 풀어서 0점이니까 알아서 해."



땡시 시간.


쳐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때 30초가 정말 짧은 시간이라는걸 알게 된다.



거진 25~35문제 정도를 그렇게 풀고 나면



"땡."


"자 60초 정리 시간."


....



"땡."


"시험 끝. 지금부터 답안지에 손 대면 부정행위로 0점 처리합니다."



해부 실습시험이 끝나고 나면


바로 즉석에서 교수님이 해설과 함께 정답을 공개한다.


맞출 때마다 환호성이 나오고


틀릴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틀리라고 내신 문제나 아무도 예상 못 한 문제에서는


한숨 소리만 들릴 때도 있다.



그렇다면 해부가 끝나면 


의대생들은 땡시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조직학과 병리학이 아직 남아있다.


이제는 현미경 땡시와 모니터 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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